제2부 참선 법문
이끄는 말
여러분들이 항상 와서 가르침을 청하니, 나는 매우 부끄러움을 느낀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힘들게 장작을 패고 농사를 짓고, 흙을 돋우고 벽돌을 나르며 하루가 금방 지나가 저녁이 되면, 도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린다. 어떤 것이 도를 위하는 진실한 마음이며, 실제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이 허운은 부끄러워하며, 도(道)도 없고 덕도 없어 법상에 오르지 않고 소위 법문을 설하지만, 다만 이것은 옛 사람들이 하신 몇 마디 말씀과 몇 구절을 이끌어 여러분의 질문에 대답할 뿐이다.
수행하여 도를 얻는 방법은 매우 많지만, 지금은 간략한 개요만 말하겠다.
1. 깊이 인과를 믿으라
말할 것도 없이 어떤 사람이든지 수행해서 도를 깨치려는 사람은 먼저 인과를 깊이 믿어야 한다. 만약 인과를 믿지 않고 함부로 행동하면 도 공부에 성공하지 못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삼악도의 고통이 적지 않게 닥쳐올 것이다. 옛 스님이 이르기를, "전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지금 받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내생의 일을 알고 싶은가.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설사 백 천 겁이 지난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으며 인(因)과 연(緣)이 서로 만날 때 과보를 역시 받게 된다" 하였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원인이 참되지 못하면 결과도 비뚤어진다" 하였다. 그러므로 좋은 원인을 심으면 좋은 결과를 맺고 악한 원인을 심으면 악한 결과를 맺는 것이다. 참외를 심으면 참외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 것은 필연적인 도리인 것이다.
인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가 두 가지 고사를 들어 이를 증명하겠다.
1) 유리왕이 석가족을 죽인 고사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카필라성에 고기잡이 하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큰 못이 있었는데 어느 해에 가뭄이 들어 물이 말라 그 못의 고기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게 되었다. 이때 마지막으로 가장 큰 고기 한 마리가 나왔는데 이 고기 역시 삶아먹히게 되었다. 이때 전부터 고기를 먹지 않던 한 소년이 이 고기의 머리를 때리면서 희롱을 했다.
후에 석가 부처님께서 계실 때 파사익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었으며 석가족의 여인을 왕비로 얻어 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유리라 하였다. 유리 태자는 어릴 때 석가족이 사는 카필라 성에서 자라고 공부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앉는 자리에 올라가 놀다가 사람들의 꾸중을 들었고, 그들에 의해 끌어내려졌으므로 마음에 분한 생각이 맺혔다.
그가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 문득 대군을 이끌고 카필라성을 공격하여 성내의 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3일간 두통이 있으셨다. 여러 큰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법을 베풀어 저들을 구해주시기를 청했으나 부처님께서는, "결정된 업은 돌이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목건련 존자는 신통력으로 석가족 5백인을 발우 안에 넣어 공중에 띄워 그들을 구하려 했지만, 발우를 내려 놓으니 모두 피로 변해 버린 것을 어찌 알았으리요.
여러 제자들은 그 이유를 부처님께 여쭈었는데, 부처님께서는 과거세에 마을 사람들이 고기 잡아먹은 그 이야기를 하셨다. 즉, 그때의 큰 물고기는 지금 유리왕의 전신이고, 그가 거느린 군대는 그때의 많은 물고기들이며, 이번에 죽은 카필라성 주민들은 그때 고기를 잡아먹은 사람들이고, 부처님은 그때의 소년으로 고기의 머리를 세 번 때렸기 때문에 이번에 3일간 머리가 아픈 과보를 받았다 하셨다. 결정된 업은 피하기 어려워서 석가족 5백인은 비록 목건련 존자가 구출하려 했으나 생명을 잃고 말았으며, 그 후 유리왕은 산채로 지옥에 떨어졌다.
원한과 원한은 서로 갚는 것이므로 끝날 날이 없으며, 인과는 진실로 있는 것이니, 가히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2) 백장 스님이 여우를 제도한 고사
백장 스님이 하루는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하셨다. 법상에서 내려온 후, 사람들이 다 돌아갔는데, 한 노인이 돌아가지 않았다. 백장 스님이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하는가?" 하니, 답하기를, "저는 사람이 아니고 여우의 정령인데, 본시 이곳의 조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스님이 저에게 '큰 수행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하고 묻기에 저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이 대답 한 번 잘못하는 바람에 타락하여 5백 년 동안 여우의 정령이 되어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자비심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백장 스님은, "그대가 나에게 물어보라." 하니, 노인이 묻기를, "스님께 여쭙니다. 큰 수행인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이에 백장 스님이 답하기를, "인과에 어둡지 않다" 했다. 노인은 이 한 마디에 크게 깨달아 곧 절하고 말하기를, "이제 스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제가 여우의 몸을 벗게 되었습니다. 제 몸이 뒷산 바위 아래 있으니 바라건대 스님께서 죽은 중의 예법으로 장사 지내 주십시오"하였다.
다음 날 백장 스님은 뒷산 바위 아래를 막대기로 파서 한 마리의 죽은 여우를 발견하자 죽은 승려의 예법으로 화장해 주었다.
우리는 이 두 고사를 들었으니 인과가 가히 두려운 것이며, 비록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두통의 과보를 면할 수 없다는 것임을 확실히 알았다. 과보의 상응은 털끝만큼도 어긋나지 않고, 결정된 업은 실제로 있어 피하기 어렵다. 우리는 그때그때 삼가고 두려워하여 원인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2. 계율을 엄수하라
수행하여 도를 이루는 데는 첫째가 계율을 지키는 것이다. 계율은 위없는 깨달음의 근본이다. 계로 인하여 비로소 선정이 생기고, 선정으로 인하여 비로소 반야지혜가 생긴다. 계를 지키지 않고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능엄경에서 네 가지 청정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으니, 계를 지키지 않고 삼매를 닦는다 하더라도 티끌세계를 벗어날 수 없으며, 비록 많은 지혜와 선정이 앞에 나타나더라도 역시 사마와 외도에 떨어질 것이라 하였다. 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로써 알 수 있을 것이다.
계를 지키는 사람은 하늘과 용이 옹호하고, 사마와 외도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지만, 계를 깨뜨린 사람은 귀신들이 큰 도적이라고 하면서 그의 발자취를 쓸어버린다.
옛날 계빈국에 절터가 있었는데, 독룡이 수시로 나타나서 그 근방에 해를 끼치므로 5백 명의 아라한이 함께 모여, 선정력으로 용을 쫓아내려고 했으나 쫓아내지 못했다. 후에 한 스님이 와서 선정에도 들지 않고 용을 향해서 한 마디 설하기를, "어진 이여, 여기서 멀리 떠나라" 하니, 이 독룡이 멀리 달아났다. 이 때 여러 나한들이 이 스님에게 무슨 신통으로 독룡을 쫓았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 스님은 "저는 선정의 힘을 쓰지 않고, 바로 계행을 지켜 가벼운 계율도 수호하기를 오히려 무거운 계율과 같이 지킵니다." 라고 했다. 우리는 5백 아라한의 선정력이 계율을 엄수하는 한 사람의 스님에 미치지 못한 점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육조 스님 말씀에, '마음이 평안하면 어찌 애써 계를 지킬 것이 있으며, 행동이 곧으면 어찌 굳이 참선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하였다" 한다. 그러나 내 감히 묻거니와, 그대의 마음은 평안하고 곧은가? 만약 달밤에 아름다운 여인이 알몸으로 그대를 껴안는다면 그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는가? 또 어떤 사람이 이유 없이 그대를 욕하고 때린다면 그대는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그대는 원수와 친한 이, 미움과 사랑, 나와 남, 옳고 그름을 능히 분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확실히 그럴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해도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허튼 소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신심을 굳게 지니라
생각건대 수행하여 도를 이루려면 먼저 굳은 신심을 지녀야 한다.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무슨 일을 하든 신심이 없으면 잘할 수가 없는 법이다. 우리는 생사에서 해탈하려면 이러한 견고한 믿음을 더욱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께서는, "대지의 일체 중생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만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서 능히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하셨고, 또 "온갖 법문은 중생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하셨다. 우리는 마땅히 부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다고 믿고, 모든 중생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지금까지 성불하지 못했는가? 그것은 모두 법답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콩으로 두부를 만들지만 만약 그대가 만들지 않으면 콩이 저절로 두부로 변하지는 않으며, 만든다 하더라도 간수를 법대로 넣지 않으면 역시 두부가 되지 않는다. 만약 법답게 콩을 갈아서 끓이고 적당히 간수를 치면 반드시 두부가 된다. 도를 이루는 것도 이와 같아서, 그대가 노력하지 않으면 성불할 수 없으며, 법답게 노력하지 않으면 역시 성불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여법하게 수행하되 물러나거나 후회하지 않으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깊이 믿어야 하며, 또한 법답게 수행하면 반드시 성불한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영가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실상을 깨달으면 사람도 법도 없고,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소멸한다. 만약 내가 헛된 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발설지옥에 떨어져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이는 스님께서 자비심으로 후세 사람들의 신심을 다져주기 위해서였으며, 그래서 이러한 큰 맹세를 하셨던 것이다.
4. 수행의 길을 정하라
신심이 갖추어졌다면 곧 한 가지 법문을 정해서 계속 수행해야 하며, 이랬다 저랬다 바꾸어서는 안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염불도 좋고, 주력도 좋고, 참선도 좋다. 여하튼 한 법문으로 일관되게 해 나가되 다시 물러서거나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이루지 못하고 내일도 그럴 것이며, 올해도 이루지 못하고 내년에도 역시 그러하며, 금생에도 이루지 못하고 내생에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위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생을 만약 물러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부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하셨다.
어떤 이들은 수행의 길을 정하지 못하고 오늘은 이 선지식이 염불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한 이틀 염불을 해보다가, 내일은 다른 선지식이 참선이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또 한 이틀 참선을 해본다. 이렇게 동으로 갔다가 서로 갔다가 하면서 한평생을 허비하다가 죽음에 이르면, 지금까지 한 것이 모두 허송세월이 되어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하니, 이름은 그럴듯 하나 어찌 한탄스럽고 헛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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